- 눈뜬 자의 슬픔.
볼 수 없는 사람이 더 슬플까? 그런데 혼자만 눈을 뜨고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맹안 속에 빠져 있을 때, 혼자 그 아수라 지옥을 목격해야 하는 자는 더 슬프지 않겠니? 자기 말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더 있을 거라 믿었지만, 결국 눈뜬 자는 자기 혼자 밖에 남지 않았음을 안다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자원해서 수용소로 들어가 눈먼 자들이 하나 둘씩 추악함을 드러내는 그 모습을 봐야 하는 아내. 결국 아무도 기억 못할 고통의 날들을 혼자만 기억해야 하는 슬픔.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을 때,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 혼자 아무리 외쳐도. 결국 자기 자신만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라면? 그 ‘미네르바’라는 논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뻔히 다 보이는 거짓과 조작, 무지와 맹목이 판치는 이 대한민국 사회를 혼자 눈 뜨고 지켜보는 일이.
- 맹목과 무지는 전염되는 것.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를 찾아온 ‘맹안’은 결국 사람들의 손과 공기를 거쳐 모든 사람들에게 전염되고야 말았지. ‘눈이 머는 병’이 어떻게 전염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고 제대로 방역이 되지 않는 사이 병은 퍼지고 통제 불능은 현실이 되었어.
조작되고 강요된 맹목과 무지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전염병처럼 우리를 덮치지. 수 십 년 동안 그렇게 이념, 색깔, 편견, 지역감정, 노예근성, 자본논리라는 맹목과 무지는 모르는 사이 조금씩 우리들의 의식 사이를 비집고 전염되었고, 결국 영혼까지 갉아먹는 무서운 병이 되었네.
- 무지한 권력보다 무서운 것은 없지.
수용소에 들어 올 때 총 한 자루 몰래 갖고 들어온 바텐더는 그 총을 휘두르며 눈먼 자들의 왕 노릇을 하네. 그는 그 총에 기대어 사람들을 짓밟고 착취하고 지배하려 하지. 하지만 무지한 눈먼 자들의 왕은 눈뜬 자가 자신의 죄악과 추악한 짓거리를 낱낱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 턱이 없고. 결국 그는 스스로의 자만심에 빠져 죽게 되고, 그를 따르던 자들도 모두 죽게 되지.
무지한 권력보다 무서운 것은 없지. 무지한 권력은 자신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그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까지 다 죽이니까. 맹목과 무지의 왕은 자기 백성들에게도 똑같은 무지와 맹목을 강요하거든. 그리고 자기 자신과 부하들까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무덤에 걸어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 눈 뜬 자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지.
눈뜬 아내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만 남기고 모두 눈먼 자들이 된 것을 알게 되었어.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을 때는, 힘이 들더라도 수 십 명의 사람들을 뒷바라지 하며 버텼지. 하지만 결국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기의 남편과 몇 몇 사람들만 돌보고 살아남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도 이제는 너무 늦어 버렸거든.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믿을 때, 눈 뜬 선각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인도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하지만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믿게 되면 그들도 어쩔 도리가 없는 거야. 자기 한 목숨, 자기 가족만 챙기기에도 벅차게 되는 때가 오는 거지. 그러니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할 때, 좀 들은 체라도 해봐. 그들이 하나 둘씩 포기하기 시작하면 그 땐 정말 끝인 거니까.
- 무지한 사람은 남들도 모른다고 생각하지.
눈먼 남편은 눈 뜬 아내도 눈이 멀었다는 착각을 했지. 자신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거든. 그래서 아내가 지켜보고 있는 그 순간에 다른 여자와의 간음에 빠졌지. 하지만 눈 뜬 아내는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기억했어.
무지와 맹목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알지 못할 것이라 믿지. 그래서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으며 최선이라 믿지. 하지만 눈 뜬 자들에게 맹목인들의 어리석음과 욕망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든. 맹목과 무지에 빠지면 눈이 보이건 안 보이건 아무 차이도 없게 되는 거야. 뻔뻔한 맹목과 끝없는 탐욕으로 대한민국을 파멸로 몰고 가고 있는 그 자들은, 자신들의 뻔히 보이는 그 무지와 욕심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고 믿지.
- 맹목과 탐욕의 비극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어.
맹안이라는 돌림병이 사람들을 눈멀게 하자 권력자들은 맹안병에 걸린 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었지. 그들만 잘 통제하면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 믿었거든. 그리고 수용소 안에서 자기들끼리 죽이든 살리든 관심이 없었어. 하지만 전염병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어. 대통령과 장관까지도 결국 맹안병에 걸려 죽음의 수용소로 걸어 들어가야 했지.
맹목과 무지에 갇힌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다 도태되고 죽어도 상관없다고 지배층들은 믿고 있어.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야 실업자가 되건 자살을 하건 지들끼리 싸우다 죽건 상관없다고 믿고 있지. 하지만 결국 사회가 밑에서부터 무너지고 병들어 가는데, 지배층이라고 버틸 재간이 없지. 받침돌이 없어지면 추락해 모두가 죽을 일만 남지. 무지한 사람들끼리 서로 옳다고 싸워봐야 아무 결론도 없어.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진실과 진리를 알기 위해 싸워봐.
- 맹목은 희생을 강요하지.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켜오던 질서와 양심까지도 모두 버리게 되지. 맹안이라는 공포가 그들을 맹목으로 이끌었던 거야. 오직 살아남고 지배하겠다는 그 맹목으로 남편은 아내들에게 몸을 팔아 빵을 얻어오라고 한 거야. 그들은 맹목이라는 공포에 빠져 싸우거나 대항할 생각은 못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희생만 강요했어.
맹목(盲目)은 맹안(盲眼)과는 다른 것이지. 맹안은 사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맹목은 진실이 보이지 않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라서 성실하고 순수하지. 하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맹안은 공포를 주고 맹목을 가져오는 거야. 세상에 미래가 없고 장래가 불투명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 공포로 인해 맹목에 빠지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거나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거든. 그래서 투기로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노동의 대가를 자기 혼자 독차지 하려고 하게 되지.
- 맹목이 지배하면 눈먼 것과 다를 바 없지
맹안병이 돌고 있는데도 지도자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할 생각을 못 하지. 그저 병 걸린 자들만 격리시키면 안전할 거라 믿은 거야. 그들에게 병 걸린 자들은 구제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격리와 파괴의 대상인 거야. 눈뜬 자가 눈먼 자를 따라 가겠다고 해도 관심조차 없지. 그 사람이 왜 맹안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연구를 했다면 백신을 만들 수도 있는데 말이지.
사회 시스템이 망가지고 근본적으로 썩어들어 가고 있는데도,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방안 같은 것은 없어. 그저 임시방편으로 어찌어찌 하다보면 언젠가는 해결될 거라는 세월 좋은 망상만 하고 있지. 무지와 맹목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길과 대안을 제시해도 관심조차 없고, 그저 어떻게 하면 입막음을 하고 겁을 줄까 하는 생각만 하거든.
자! 그러니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저기 어디 아프리카에 있는 이름도 모르는 도시가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인 거야. 아직 영화를 안 봐서 모르겠다고? '눈먼 자들의 도시'에 숨어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한 번 잘 찾아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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